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리 코뮌 (문단 편집) == 영향 == 비록 코뮌은 실패로 끝났지만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시도는 이후 세계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훗날 [[러시아 혁명]]을 통해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을 세우는 데 성공한 [[블라디미르 레닌]]부터 파리 코뮌을 사회주의 혁명의 예행 연습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했으며[* 레닌은 [[소련]] 체제가 두 달을 버티자 파리 코뮌보다 오래 지속됐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이후 전세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본보기/반면교사가 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혁명사에 비춰보면 파리 코뮌은 그간 프랑스 혁명을 이룬 [[상퀼로트]]들의 최후의 폭력을 동반한 혁명이라고도 할 수있다. 역사가 데이빗 톰슨에 의하면 파리 코뮌은 [[1789년]] 이래의 프랑스 혁명적 전통의 매듭 중 가장 큰 것으로서, 파리 코뮌이 문명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야만적으로 끝나자 이후 폭력의 호소를 불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가 평화적 타결로 혁명을 이어가는 이유가 파리 코뮌에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뷰리라는 역사가는 파리 코뮌을 통해 프랑스가 얻은 영향으로 우선 파리 코뮌을 통해 혁명의 중점이 파리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들었다. 이전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중심은 파리였으며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모든 혁명은 파리에서 시작되고 지방의 반발은 파리의 중심을 차지한 혁명세력에게 짓눌렸다. 그러나 파리 코뮌은 '파리를 차지했는데도 지방에 밀려서 패배'했다. 파리의 절대 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폭력과 불안정 및 사회적 위기는 늘 동반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파리 코뮌의 실패로 조직화된 사회주의의 성장을 다시 지연시켰다는 면도 있었다. 물론 이후 프랑스에서도 사회주의는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지만 주류가 되기는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파리 코뮌이 해체되면서 [[국민위병]] 부대도 해체, 19세기 내내 정부와 별개로 민중을 대변했던 힘이 소멸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파리 코뮌을 통해 제2제국으로부터 제3공화국의 실현이 한층 더 빨라졌다는 것이다. 전세계 [[좌익]]에서 널리 불리는 [[인터내셔널가]]가 이 사건으로 인해 탄생했다. 인터내셔널가의 탄생에 대해 알아보려면 해당 문서 참조. [[2000년]]에 [[피터 왓킨스]]가 감독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코뮌]]이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파리 코뮌 당시 [[벨기에]]에 있었다. 그는 파리 코뮌에 대해 동정적인 자세를 취했다. 후일 파리 코뮌을 진압하고자 정부군이 파리에 들어오며 끔찍한 전투와 학살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절규했고 <참혹한 해(L'Année terrible)>라는 시집을 1872년 출판한다. 그 중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는 다음과 같다. [[https://fr.wikisource.org/wiki/L%E2%80%99Ann%C3%A9e_terrible/Sur_une_barricade,_au_milieu_des_pav%C3%A9s|원문]] ||<길거리의 바리케이드 위에서> 죄 있는 피와 죄 없는 피로 붉게 물든 디딤돌 사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12세의 소년이 친구와 함께 체포되었다. 이 자식, 너희도 [[파리 코뮌|놈들]]과 한패지? 소년은 대답했다. 우리들은 친구입니다. 좋아. 장교는 말했다. 너희는 총살감이다, 차례를 기다려라. 한 소년이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시계를 전해 주고 오겠다고 말했다. 장교는 의심의 눈초리로 소년을 노려보았다. 그건 핑계지? 도망치려고 그러지? 아닙니다. 틀림없이 돌아오겠습니다. 좋아, 도중에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쳐. 장교는 소년을 풀어 주었고 소년은 곧 돌아왔다. 소년은 벽에 등을 기대어 선 채 떳떳하게 외쳤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형은 수치를 부른다. 그래서 사관은 놓아주었다. 아이여, 나는 알 수 없다. 선도, 악도, 영웅도, 도둑도. 모두를 끌어넣어 흘러가게 하는 회오리 속에서, 무엇이 너를 이 전투에 끌어들였는지, 하지만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마음이야 말로 가장 기품 있는 마음이었음을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